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그냥 편하게 집캉스를 가자고 마음먹고 뒹굴거리기로 했다.
가볍게 영화나 볼까 하며 넷플릭스를 틀었는데 품위있는 그녀가 넷플릭스에 떠 있었다. 꽤 유명했던것 같아 틀었다가 온 휴가를 다바쳐 정주행해버렸다.
JTBC 및 종편 드라마 중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결말이 조금 아쉬웠지만 명성에 걸맞게 스토리가 꽤 입체적이고 화면 구성도 예뻐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인기있는 드라마는 다 이유가 있나보다.
(아래로는 드라마의 결말 및 스포가 있습니다.)
간략 줄거리
돈 많은 사람들 (드라마에서는 강남 사람들) 의 삶과 그들에게 편입되고싶은 가난한 여인의 투쟁 이야기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대부분의 막장 드라마처럼 진부한 면이 있지만 신데렐라 스토리 치곤 드물게 결말은 비극으로 끝이난다. 애초에 신분상승에 성공한 박복자 (김선아) 가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드라마가 시작된다.
초반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및 관계에 초점이 맞춰 진행되고 후반에서는 박복자를 누가 죽였을까 추리하며 진행된다.
15세 이상 시청 가능한 드라마인 만큼 폭력적인 장면도 꽤 나오는데 연출을 잘한건지 리얼하게 다가왔다.
주인공 김희선, 김선아
시아버지인 회장님의 생신을 축하하는 재롱둥이 둘째 며느리 우아진 (김희선의 능청 연기를 볼 수 있다.)
회장님의 생신을 축하하는 또 다른 여인, 간병인 박복자
배우 김희선, 김선아의 연기와 패션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드라마에서 연기의 폭이 큰 김선아는 참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잘한다. 사투리를 쓰고 어딘가 주눅들어보이는 간병인에서 세련된 회장님으로 변화하는 모습에 소름끼치기까지 하더라. 키가 크고 몸매도 좋아서 회장님으로 변신 후 세련된 스타일을 뿜뿜 뿜어주었다.
김희선은 언제적 김희선인데 지금도 너무 예쁘다. 게다가 배역이 참 배우고싶을 정도로 센스있고 재능있고 착하고 적당히 독립적인 그런 이상적인 여성이라서 더 예뻐보인다. 여성스럽고 청순한데 가끔은 파격적인 패션을 보여준다.
풍숙정
스토리를 끌고가는 주요 매개체로 부자집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반찬집이다. 모든 부자집의 가정부들이 모여서 부자들의 비밀 이야기들을 공유하는데 이 드라마가 탄생하게 된 배경 중 하나일수도 있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내가 드라마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곳이기도 한데 실제로 있다면 나도 그 풍숙 총각김치 한 번 먹어보고 싶더라. 이 집만의 노하우인 액젓 냉장고 자물쇠 비번을 박복자가 알게된 것 같은 연출 때문에 액젓을 뿌릴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봐 두근두근 했는데 19화까지 아무일이 안 일어나는 걸 보며 '이게 바로 맥거핀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액젓 레시피의 비밀이 나온다.
그 비밀은 바로 조미료. 부자집 분들은 워낙 좋은 것만 드셔서 조미료 맛을 잘 모르시나보다. 정말 그 맛 궁금했는데 마지막에 조금 실망했다.
불륜을 대하는 자세
이야기 속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람을 피우는데 다들 자기가 바람피우는건 괜찮으면서 내 배우자가 바람피우는건 용서하지 못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긴 애초에 그렇게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면 바람을 안 피웠을수도..
그 와중에 돈 주며 만나는 남자를 진짜 사랑해버리는 여자와 거기에 '남자랑 여자는 그게 달라.' 라며 위로인지 뭔지 모를 말을 던지는 진부한 장면이 나오지만 마지막엔 이를 극복하고 다른 남자와 쿨한 만남을 갖게 된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잘 모르겠다. 이걸 진화한 것이라고 하기도 이상하고 남성화 됐다고 하면 또 역차별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인 것 같고 뭐 이상하다.)
김희선의 남편 역할인 정상훈이 이태임과 바람을 피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상생이야. 난 너랑 이혼 못해. 그런데 걔랑도 못 헤어져.' 라고 외치는 모습이 참 자유롭더라. 바람 피우는 상대녀가 '우리는 운명이에요. 진짜 사랑이라구요.' 라고 외치는게 참 진부한데도 이 말에 어떻게 대꾸해야 사이다일지 모르겠다. 김희선이 걸크러시를 뿜어대서 순간적으로는 한방 먹인것 같은데 본인들이 개선의 의지가 없는 이상 결과적으로는 해결되는게 하나도 없다. 참 남녀가 뭔지 사랑이 뭔지 꼬이는 순간 진흙탕이고 구질구질해지는 것 같다. (이 와중에 이태임 코트 예쁘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 이라고 우리 우아진씨는 오늘도 예쁘세요. 드라마속 또 하나의 이상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강기호 (이기우) 변호사님 머시썽!!
전 시아버지를 간병중인 우아진을 걱정해서 도시락 들고 찾아온 변호사님이고 뭐고 김희선 옷이 예쁘다.
박복자가 성공했는데도 불행한 이유
내 생각에는 본인의 행복을 본인의 시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측정하려고 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약간 다른 메세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드라마에서는 자꾸 우아진이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부리지 말라고 강조한다. 박복자가 불행한 이유도 본인의 것이 아닌 것을 탐해서라고 한다. 스토리도 권선징악 형태로 우아진은 끝까지 당당하고 본인의 능력으로 더더욱 빛나게 되고 박복자는 750억을 손에 쥐었음에도 슬프고 주눅들어 보인다.
왜?
박복자가 750억 손에 쥔 것은 본인 능력이 아니고 우아진이 가방 디자인하고 보는 눈이 센스있는 것만 본인 능력일까? 결말로 달려갈수록 이런 시선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물론 박복자가 한 일이 도덕적으로 옳은 방법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식의 도덕관이면 박복자와 대성펄프의 뒤통수를 친 사모펀드도 벌을 받아야지. 돈 없는 사람이 뒤통수 치는건 사기고 부자가 뒤통수 치는건 머리가 좋은건가?
본래 의도는 돈이 많다고 품위가 따라오는 게 아니라 내면이 품위있어야 품위있는 그녀 (우아진) 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싶었던 것 같지만 결국 개미는 흙을 먹고 살아야지라는 결론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웠다.
이런 면에선 차라리 다른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서의 '검으려면 끝까지 검어라.' 같은 문구가 더 파격적이지 않나 싶다.
부자들이 왜 그럴까?
드라마속에서 회장님의 아들 딸들, 심지어 첫째 며느리까지 시종일관 바보같고 무력하다. 그래도 대성펄프가 750억 (심지어 실제 가치는 750억보다 높을수도 있다.) 에 팔렸으면 다른 코스피 상장사들의 시가총액과 비교했을 때 중간은 가는 회사인데 자식들에게 경제적 교육이 하나도 안되어있고 시종일관 돈달라는 소리만 내뱉는다. 그나마 회사에서 일하는 둘째 아들도 여자 문제로 회사일은 나몰라라하는 것을 보며 실제 부자들은 저렇지 않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 너무 희화화 된 게 아닌가 싶었다.
사고친 남편 때문에 숨죽여 살다보니 열등감이 심해보이는 첫째 며느리
여담
예전에는 대부분의 성폭행 가해자가 남자였다면 요즘에는 여자가 가해자인 경우도 종종 보인다. 원래 여자는 성욕을 잘 조절할 수 있었던게 아니라 그냥 힘이 없었던 건가보다. 결국 폭력이라는 것은 힘쎈 사람이 그보다 약한 사람에게 휘두르는 것이기에 사회가 발전해서 물리적인 힘 말고도 다양한 권력이 존재하게 될 수록 다양한 양상의 폭력이 발생되는 것 같다.
사모펀드 굴리시는 칠공주 모임
이래저래 아쉬운 소리들도 많이 해댔지만 매우 재밌게 푹 빠져서 봤다. 백미경 작가님이라는데 '힘쎈여자 도봉순'이 전작이라고 한다. 전작에 비해 단점은 숨기고 장점은 더 부각시킨게 '품위있는 그녀'라고 하니 다음 작품은 더욱 기대가 된다. 멋있는 두 주인공의 사진으로 마무리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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