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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엄마의 냉장고를 정리해 드렸다 - 버킷 리스트 수행하기

한창 코로나가 심했던 시절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인테리어 및 정리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었죠.
여전히 인테리어 업계가 잘 되는 것을 보면 집의 분위기가 얼마나 우리의 기분을 좌우하는지 다들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원룸 생활을 오래했는데요 짐을 아무리 최소화 한다고 해도 늘 비좁더라구요.
아파트로 이사를 갔을 때, 어디에 어떤 짐을 놓아야 할지, 한 눈에 보이지 않는 집 구조도 참 당황스러웠고요 뭘 해도 텅 빈 것 같이 느껴졌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꽉 찬 집이 되었네요.
 
어느 날 부턴가 엄마가 정리를 시작하시면서 "신박한 정리를 따라해 봤어." 라고 하시더라구요. 그게 뭔지도 모르던 저는 TVING에 가입하고 구독을 시작했습니다.
프로그램이 매력있고 잔잔하니 좋았어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다큐가 슬슬 지루해지고 있었는데다 다양한 가정 형태가 많이 등장해서 좋더라고요. 제게 맞는 케이스를 찾아서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놓고 사나 살피기도 했어요.
제가 가장 감명깊게 봤던 부분은 냉장고 정리에요. 실제 프로그램에서는 1~3화 정도에만 노출됐었는데 아마 더 완성된 형태의 프로그램으로 바뀌어 가면서 새로운 부분을 많이 보여주려고 한 것이겠죠. 저는 요리를 많이 안 하는 편이라 냉장고가 거의 비어있는데요 엄마 집 냉장고가 자꾸 생각나는거에요.

우리 엄마 냉장고를 정리해드리고 싶다.

 
3년 전에 오직 냉장고 정리를 해드리려고 제주도에 왔었어요. 그 때, 동일한 반찬은 적당한 크기의 통에 합치고 보관한지 오래된 음식들 중 먹을 수 없는건 과감히 버리기도 하면서 냉장고가 깔끔해졌었거든요. 대신 설거지 거리도 많아졌지만 빈 반찬통도 많아지고 오래되어 금이 간 반찬통들은 버릴 수 있었답니다.
엄마는 당연히 너무 좋아하셨고 저도 기분이 좋았어요.
 
근데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요. 또 냉장고를 열어봤어요.

 
또 꽉꽉 찼죠?
엄마가 찍지 말라고 잠시 저항하셨는데 헤헷 미안합니다 엄마마님.
이 중엔 저랑 제 동생이 부모님 드린다고 챙겨온 음식들도 있고 엄마가 저희 주신다고 싸 놓으신 음식도 있거든요. 그거 제외하고도 뭐가 많아서 "엄마~ 냉장고를 정리해봅시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냉장실은 됐고 냉동실 좀 정리해줘.

라고 하시는거에요.
아빠가 작은 텃밭을 가꾸시기 때문에 이런 저런 농작물과 채소들이 자주 비닐에 쌓여 냉동실에 들어가게 되거든요.
이제는 공간이 없어 보관하기 힘들다고 하시더라구요.
뭐가 있는지 까먹어서 사용하고 싶을 땐 찾기 힘들고 불편하다고 하셔서 일단 꺼내보기로 했습니다.
녹을까 우려하셔서 윗 칸부터 한 칸씩 꺼내서 정리하고 다시 넣고 하는 방식으로 정리를 했어요.
 


 
예전에 정리했던 기억으로 쇼핑백에 담아서 이름을 적어놓으셨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내용물이 달라져 있더라구요.
꺼내서 같은 것들은 모아서 같은 쇼핑백에 담고, 적게 남은 것들은 합치거나 상태가 안 좋은 것들은 버렸어요.
과감하게 "비워~!"를 외치고 싶었는데 아빠가 좀 많이 서운해하셔서 조곤조곤 상태에 대해 읍소하고 허락을 받아가며 비웠습니다. 유통기한이 써 있는 것들은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얼마 안 남은 것에 대해 주지시켜 드리고 지나간 것은 비웠습니다.
와..저번에 제가 대충 했나봐요. 2013년 찹쌀가루가 나왔어요.

 
냉동실에 넣더라도 대부분 1년을 넘기면 안 좋은 것 같더라구요.
 

 
밭으로 돌아갈 녀석들은 통에 차곡차곡 담고 부피가 큰 버릴 것들은 따로 또 모았어요.
제 마음만큼 다 비워드리진 못 했는데 엄마가 차근차근 조금식 비워보겠다 하셨어요.
그 와중 '오징어인가?' 했던 저 얼음 덩어리는 냉동 딸기였답니다. 허허 저렇게 다 얼어서 허옇게 되어버린 것들은 먹지 않는게 좋다고 하니 녹여서 먹어볼까 하는 분들은 멈추십쇼!!
 

 
정리를 하면서 발견한 월척도 있었습니다.
수확해서 얼려놓은 딸기랑 껍질까서 얼려 놓은 더덕을 우유와 함께 갈아봤어요. 담백하니 생각보다 맛있더라구요. 부모님은 꿀을 타서 더 맛있게 드셨고요.
한 번에 다 갈지 말고 조금씩 소분해서 얼려놓을 걸 그랬어요. 왠지 잘 갈아 드시지 못 할까봐 마음이 급했네요.
그리고 엄마가 선물 받으셨다던 캐슈넛은 뜯지도 않은 채 발견되었는데 다행히 한달정도 유통기한이 남았더라구요. 열어서 하나씩 껍질 까서 먹어봤는데 기대보다 더 맛있어서 놀랐어요. 뿌듯했답니다.

 

Before vs. After

 

 


대망의 비포 & 에프터 사진입니다.
차이가 크진 않죠? 자세히 보면 숨쉴 공간들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로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알게 됐잖아요. 저는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알고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게 정리의 목적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사용해야 할 것들을 포스트잍에 작성해서 붙여놨습니다.
이제는 엄마가 시간나실때 조금씩 비우실 수 있겠죠?
깨끗한 냉장고에서 건강한 식사를 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랑합니다. 아빠 엄마 ❤